궁산 땅굴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굴착된 곳으로,
군수 물자를 저장하거나 김포 비행장을 감시하고,공습 때에는 부대 본부로 사용하기 위한 곳이었고 전해진다.
이를 위해 인근 지역 주민을 보국대로강제 동원하였다.
그렇다면, 왜 궁산인가?
궁산 정상에 자리한 양천 고성(古城)은 한강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부터 중요 군사 거점이었다.
이를테면,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은 이곳 양천산성에 진을 치고 전쟁의 판세를 가늠했으며,
행주산성으로 군대를 이동시킨 뒤, 행주대첩이라는 빛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이름인 궁산은 양천향교가 있어 공자(孔子)를 모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전부터 궁산 일대에 지하 땅굴이 조성돼 있다는 인근 주민들의 주장에 따라 이에 대해 확인한 뒤,
당초 이를 역사・문화 전시관으로 조성해 일제 강점기 착취와 수탈의 참상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2010년 공사 도중 대형 낙석이 발생해 안전 진단 후, 이곳을 폐쇄해 왔다.
2018년 5월 이곳은 ‘봉인된 시간과 공간의 터널’로 탈바꿈하여
역사성과 교육성 및 지역 정체성을융합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궁산 땅굴은 높이 2.7m, 폭 2.2m, 그리고 연장 길이 68m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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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땅굴 역사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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